호주는 한국보다 쇼핑이 쉽지 않고 고를 수 있는 물건에 개수도 별로 많지 않고 인터넷으로 주문해도 적어도 3-4일 내지는 일주일 이상 걸리는 호주에서 뭔가를 산다는 것은 참 시간 낭비라고 생각이 된다. 특히 내가 사는 애들레이드는 지난 11월 말이 되어서야 유니클로 매장 하나가 들어왔다. 한국에서 흔한 아니, 다른 호주 대도시에 비해 명품 매장 없는 애들레이드가 돈 모으기는 최고의 도시인 것 같다.
왜냐고? 쇼핑할게 별로 없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미니멀리스트로 살기 좋다. 나는 원래 맥시멀리스트였다. 같은 제품은 색깔별로 사기도 하고, 한 가지에 꽂히면 여러개를 사곤 했으니까. 예를 들면, 다꾸에 꽂혔을 땐, 다꾸에 필요한 모든 기어들을 다 준비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호주가 미니멀리스트로 살기 좋은 이유
첫째 배송이다.
한국 같으면 오늘 주문하면 오늘 오는 그런 특별한 배송 시스템 덕분에 쇼핑 하는 것이 재미있고 내가 굳이 가게로 가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것이 많은 게 좋은 것 같은데 호주는 그럴 수가 없다. 오늘 구입한다고 오늘 배송이 오기는커녕 내일 오기도 참 어렵다. 참고로 애플 제품은 오늘 배송 시작 하면 내일 오기도 하지만 말이다. 대부분의 eBay 또는 아마존에서 쇼핑하게 되는데 이베이는 일주일 걸리고, 아마존은 그나마 2-4일 걸린다.
그 덕분에 나의 많은 물욕은 많이 사라져버렸다. 살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고 내 맘에 드는 건 한국에서 살 수 있는 것이 많았다.
예를 들면, 고기불판의 경우, 호주는 가스렌지나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에 놓고 굽는 일반 국산 고기 불판은 많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인덕션용 고기 불판은 없다. 구하려고 하면 한국에서 해외배송으로 비싸게 받아야 한다. 그러면 한국에서 3-4만 원 하는 불판을 불판이 무겁기 때문에 배송비가 제품가격보다 더 많이 나오기도 한다. 배로 받으면 2-3개월 걸리니 비행기로 받게 되면 DHL 등 비싼 배송업체를 써야 하니 포기하게 된다. 그래도 직접 내가 비행기 타고 가서 사 오는 거보다는 싸지 않나 하는 생각이 구입 시도를 몇 번 했으나 사악한 배송비 때문에 곧 포기하게 된다.
이런 생활을 지속하다보니 뭔가 물건이 없어도 살 수 있다는 걸 배우게 되었고 사람이 무조건 100% 다 채워서 살 수 있다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둘째, 살게 별로 없다.
내 눈높이(?)를 맞춰줄만한 제품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하이퀄리티를 원하는 건 아니고, 예쁘고 아기자기한 그런 것들 좋아하는 나로서는 여기에 내 취향의 제품들이 없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소비를 덜 하게 된다. 옷도 그렇다. 난 여기서 옷을 산 게 거의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다. 일 년에 하나도 안 사는 것 같다. 사면 속옷 정도만 살까. 그에 대한 단점이 있다면, 큰 걸 지르게 된다. 가전제품이나 휴대폰은 비교적 전 세계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에 다른 자잘한 소비를 못하는 대신 통 크게 구입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 아이폰 14 프로맥스도 구입하게 된 것이다. 하나의 보상심리라고나 할까.
셋째, 필요없는 건 중고로 내놓기 좋다.
호주는 중고마켓이 잘 활성화되어 있는 것 같다. OP shop이라고 해서 한국 같으면 아름다운 가게 같은 곳이 많이 있는데, 여기는 종류도 많다. Salvos, Vinnies, Save the Children, Lions club 등도 있고, 동네 교회에서 운영하는 옵샵도 있다. 그곳에 가면 내가 쓰지 않은 것을 기증할 수도 있고, 내가 필요한 세컨핸드 제품을 아주 저렴하게 사 올 수도 있다. 품목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1~$5 정도에 사 올 수도 있다. 또한 검트리라는 것을 이용해서 내가 필요 없는 것을 팔 수도 있다. 나는 이 방법이 좋지만 시간 있는 사람에게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상대방과 약속을 잡아야 하고, 내가 뭔가 필요하면 제품이 있는 곳으로 직접 가지러 가야 하니까 말이다. 반대로 내가 뭔가를 팔려고 하면 사려고 하는 사람을 기다랴야 하고 그게 만약 불발되면 시간낭비가 된 셈이니 말이다. 호주 사람들은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세컨핸드에 대한 선입견이 없는 것이 처음엔 신기했다.
내가 처음 호주에 왔을 때 아무것도 없었다. 진짜 다 새로 샀어야 했고, 중고로 구입하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지금 남편 만나서 사니 남편이 갖고 있는 것을 쓰면서 불편하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어도 그런대로 그냥 저냥 살게 된다. 내가 이렇게 대충 살았던 적이 있었나 싶지만, 이 생활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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